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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구절은혜나눔] 260314 마태복음 14장 - 간구하니 다 나음을 얻으니라
글쓴이 송현석
날짜 2026-03-14
조회수 1447

본문 개요

예수님은 여러 가지 놀라운 일들을 통해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가르치십니다.


오늘의 한 구절

[개역개정]

26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27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새번역]

26 제자들이,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서 “유령이다!” 하며 두려워서 소리를 질렀다.

27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심하여라. 나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한 구절 묵상

두려운 상황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면 마음에 평안이 찾아옵니다. 제자들은 배를 타고 이동하다가 큰 풍랑을 만납니다. 그리고 사람이 물 위로 걸어오는 것을 보며 깜짝 놀라 비명을 지릅니다. 그때 예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하루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우리가 무슨 일을 만나도 두려워하지 않을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묵상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니, 두려워 말라! 두려움을 이겨내는 하루가 되길 원합니다.


묵상질문

1.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오늘 나에게 주신 교훈 또는 감동은 무엇인가요?


제 14 장

1   그 때에 분봉 왕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2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라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역사하는도다 하더라

   -자기 죄에 제 발 저려 예수 그리스도를 세례 요한의 부활이라 생각하는 분봉 왕 헤롯

   -나의 죄악이 쌓이면 쌓일수록 죄성이 본성인 나에겐 정작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로 향하신 복음이 눈과 귀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내 죄를 들추시려한다는 착각과 피해망상만 쌓이고 있는 장면을 보여주심. 죄성의 본질이 거짓, 즉 스스로 속이는 것임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음.

   -나의 죄악을 어떻게든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려 애쓰는 헛되고 덧없는 시도를 중지하고, 있는 그대로의 더럽고 음란하고 미련하고 악독한 모습으로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멸시치 않으시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정직하게 회개하면 될 일. 지금 여기 나도 마치 헤롯같이 행동하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나?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하시고 전지전능한 능력, 죽은 자를 살리시고 눈 먼자를 보게 하시고 말 못하는 자의 입을 여시는 기적을 보고도 자기 죄악에 함몰되어 헤롯처럼 나는허우적 대고 있지 않나?


3   전에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으니

4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당신이 그 여자를 차지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5   헤롯이 요한을 죽이려 하되 무리가 그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그들을 두려워하더니

   -헤롯의 죄악을 그냥 두고 보지 않고 말씀에 따라 직언한 세례 요한을 두려워한 이유가 고작 사람들의 시선 때문. 진정으로 회개할 기회를 이렇게 놓치는 경우가 나에게 얼마나 많았었는지를 기억하게 하는 본문

6   마침 헤롯의 생일이 되어 헤로디아의 딸이 연석 가운데서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니

7   헤롯이 맹세로 그에게 무엇이든지 달라는 대로 주겠다고 약속하거늘

   -순간 순간의 쾌락과 충동 때문에 감당못할 맹세와 약속을 남발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있음. 결국 여호와 우리 하나님 앞에서 용서 받지 못할 죄악을 저지르다 벌레에 잡아 먹히게 되는 최후를 맞게 되는 것

     사도행전 12장

     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8   그가 제 어머니의 시킴을 듣고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여기서 내게 주소서 하니

   -자기 죄악을 회개할 생각은 하지 않고 죄악을 회개할 기회를 준 세례 요한의 생명을 딸을 시켜 빼앗는 악독한 모습

   -내 안의 깊은 죄성의 본질을 잘 드러내는 장면이라 묵상

9   왕이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함께 앉은 사람들 때문에 주라 명하고

10   사람을 보내어 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11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서 그 소녀에게 주니 그가 자기 어머니에게로 가져가니라

12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고 가서 예수께 아뢰니라

   -세례 요한의 이 어처구니 없는 최후를 복음서가 기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에게는 의미가 잘 떠오르지 않음. 이런 어처구니 없을 정도의 순교자들 최후 모습들이 복음이 전파된 우리 나라에서도 수없이 기록된 것을 확인할 수 있음. 복음의 미련한 것이란 과연 이런 사실들을 말씀하시는 것일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느낌. 그냥 너무 마음이 아프고 아플 뿐

     고린도전서 1장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 바 (이사야 29장 14절)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13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따라간지라

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심을 듣고 따라온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신 예수 그리스도. 왜 불쌍히 여기셨을까?

   -복음과 사랑의 본질이 불쌍히 여김, 긍휼이라는 진리에 더해,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다니는 이유를 모두 아신 전지전능하신 분의 긍휼이라 느낌. 정작 천국이 가까워 왔기에 회개해야하는 이들이 죽을 육신의 치유에만 매달리는 광경에 대한 긍휼하심이 아니었을까? 예수 그리스도의 나에 대한 긍휼하심, 불쌍히 여기심의 방향이 나의 마음과 같은 방향인지 항상 되돌아 보아야한다 묵상. 그렇지 않으면 나는 구원받은 제자가 아니라, 급한대로 자기 육신의 치유만 바라는 그거 그런 무리 중의 하나가 되어 버릴 것이기 때문.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 그저 그런 존재가 되고 싶지는 않음. 항상 나를 변치않고 영원히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더욱 가까이 가고 더욱 그를 알고 싶다는 갈망을 지니고 있기 때문

   -그럼에도 묵묵히 모든 병자를 고쳐 주신 예수 그리스도. 결코 판단하지 않고 나를 끝까지 돌보시고 사랑해 주시는 나의 구세주의 모습을 나도 본받지 않으면 안됨을 보여주신다 묵상.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내 안에 있지 않으면, 그리고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머물지 않으면 내 죄성으로는 도저히 불가능. 나의 죄성으로는 그저 판단하고 비난할 뿐이기 때문

15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1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17   제자들이 이르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18   이르시되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19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20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21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병을 고쳐주실 뿐만 아니라 배불리 먹이기까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병이어 사건을 지켜보며 느끼는 것은 진짜 사랑에서 나오는 진짜 긍휼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묵상. 어떻게 이런 사랑을 보이실 수 있는 것일까? 제자들의 말대로 알아서들 해결하게 놔두면 될 것이었음. 그러나 안해도 될 일을 굳이 하신 예수 그리스도. 이는 전지전능하심의 낭비가 아니라, 온전한 사랑의 완성이라 느끼게 됨. 어쩌면 진짜 사랑이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는 것. 효율과 책임을 따지지 않고 내가 할 바를 온전히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하는 것임을 내게 보여주시는 말씀이 아닐까? 나의 수지타산과 계산보다 우선하는 것이 사랑하는 대상의 불편과 고통과 결핍이라고 말씀하시는 것만 같다 느낌

   -그럼에도 나는 얼마나 자주, 그리고 많이 나의 귀찮음과 계산과 효율을 핑계삼아 내가 반드시 돌보아야할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방기하고 이를 정당화하고 합리화했나? 이런 나의 모습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복음서에서 고르반 전통을 들어 지적하신 바 있음. 오늘 말씀과 같이 묵상해야한다 느낌


22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예수 그리스도의 고독을 본받고 싶게 만드는 말씀. 나는 말씀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고독한 시간을 갖고 있는 삶인가? 세상과 사람들과의 연결을 완전히 끊고 오직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만 거하는 골방의 시간이 내 삶속에 자리잡아 정기적 루틴이 되고 있나? 내 손엔 말씀보다 폰이 더 오래 쥐어져 있지 않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재촉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왜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셨나? 마음이 연약한 제자들이 세상과 사람의 환호에 실족하지 않도록 만드시기 위함이라 묵상. 나 역시 내 삶 속에서 환호받고 환영받을 때 내게 말씀으로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촉에 순종하여 이 모든 것들을 떠나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는 삶을 살아내고 있나? 아니면 아직도 세상과 사람의 인정에 목말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을 발길로 걷어차는 삶을 살고 있나? 오직 말씀에 집중하는 삶을 살아내기 위해 나는 어떤 말씀에도 기꺼이 순종하는 마음을 항상 벼리고 있나?

24   배가 이미 육지에서(어떤 사본에 바다 가운데 있어)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내가 고난당하는 시간은 항상 밤 사경. 세상과 사람들이 나를 절대로 도울 수 없는 고립무원의 시간과 장소와 상황. 그래서 나는 항상 왜 하필 이렇게 아무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나를 빠뜨리시느냐고 원망하고 불평하며 일평생을 소모해버렸음. 그러나 나를 영원히 변치 않고 사랑하시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주님만 바라보라시는 하이라이트, 집중 조명으로 이 특별한 고통을 사용하시는 것임을 이제서야 깨닫고 있음. 고통은 하나님의 메가폰이라는 C. S.루이스의 고백은 결고 헛소리가 아니라 그의 지독한 고통 속에서 우러나온 지혜라 인정할 수 밖에 없음. 하나님을 떠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깊은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던 루이스가 돌아오며 기록한 그의 고백은 곧 나의 고백이라 할 수 있음

   -땅에서 수 리나 떨어져 땅의 불빛도 닿지않고 깊은 한밤중에 달과 별도 없는 폭풍 속 암흑의 시간에 제자들은 어떻게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었나? 성경은 왜 이 알 수 없는 신비를 아무렇지도 않게 감추며 기록하고 있나? 내게는 이 기록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빛이시라는 성경 말씀의 현실화라고 느껴짐. 예수 그리스도가 내 인생의 고통 위를 걸어 내게 오시는 순간 나는 결코 모를 수 없다는 진리를 알려 주시는 것이라 묵상. 예수 그리스도는 내게 숨어서 오시는 분이 아니시라, 내 고통의 한가운데를 가르며 오시는 분이시라는 진리를 분명히 내게 알려 주시는 것. 나의 고통이 얼마나 크고 또 얼마나 깊은가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음. 그런 조건은 나에게만 문제가 되는 것. 나는 나의 깊고 어둡고 지독한 고통의 한가운데를 가르며 내게 걸어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면서도 외면하고 있지는 않나?

26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이 뜻밖의 제자들의 반응이 바로 내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한 나의 반응이라면 과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떤 마음이 드실까? 믿음이 없다는 것은 세상과 예수 그리스도를 구분하고 구별하지 못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말씀이라 묵상. 왜 영접하고 기뻐해야할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고,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과는 전혀 상관없는 유령이라 여기는가? 아직도 나의 관점과 시선이 세상과 사람들에게 고정되어 있다는 증거라 묵상. 예수 그리스도를 예수 그리스도로 볼 수 있는 영안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 그가 물 위를 걸어오실 수 있는 분이시라는 진리를 머리로는 알고 있으나 결코 마음으로는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완악한 나의 모습을 말씀하시는 것이라 묵상

27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이 모든 어처구니 없는 제자들의 말과 행동을 보시고도 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기준으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제자들의 마음을 가장 먼저 돌보시고 위로하시는 말씀으로 제자들이 깨버린 관계를 오히려 '즉시' 회복시키고 계심. 예수 그리스도께서 소중히 여기시는 관계를 깨버리는 제자들을 책망치 않으시고 조용히 그 관계를 다시 '즉시' 회복시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내게는 정말로 크나큰 사랑의 확증으로 다가오는 말씀

   -예수 그리스도와 나와의 관계의 본질은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고 내게 직접 말씀하시는 것같은 복음. 그가 내게 오시면 내게 가장 먼저 없어질 것이 두려움임을 말씀하시는 것이라 느낌. 나는 어려서부터 두려움과 겁이 많은 사람이었고 지금도 그렇기에 나에게는 정말로 깊이 마음에 다가오는 말씀이라 묵상. 언제나 깜짝깜짝 놀라다 못해 아무데서나 기절하기를 밥먹듯 하던 나같은 사람에게 오늘 이 말씀을 주시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나를 정말로 깊이 사랑하시는 확증이라고 밖에 내게는 생각되지 않음. 나의 이 겁많음을 어떻게든 내 힘으로 극복하기 위해 나는 평생 해 보지 않은 방법이 없었음. 혹독한 훈련의 시간과 노력을 남들의 열 배는 기울이며 살았으나, 내게서 이 두려움을 결코 떼어낼 수는 없었음. 그러나 오늘 이 말씀은 내게서 즉시 두려움을 없애주셨다 느낄 수 있음. 예수 그리스도의 옷자락을 만진 혈루증 여인이 이런 마음이었을까?


28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어떤 사본에, 예수께 가려고 물 위로 걸어가다가) 

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다시던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으면, 도대체 베드로의 믿음은 얼마나 작았던 것일까?

   -'믿음이 작은 자'의 헬라어 원문 어휘는 합성 형용사 STRONG 3640 '올리고피스토스 ὀλιγόπιστος'. 거의 없다는 의미의 '올리고'와 믿음을 의미하는 '피스토스'의 합성어. 그러므로 원래 의미는 '믿음이 없다고 볼 수 있을 만큼'이라는 의미. 믿음을 의미하는 피스토스의 어원은 설득하다는 의미의 동사 STRONG 3982 '페이토πείθω'. '믿을 만하게 확신을 주다, 평안하게 하다, 화평하게 하다, (재귀적으로) 내적 확신에 의지하다, 권위를 받아들이다' 등의 의미가 있음. 이런 배경을 고려해보면,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할 수 있다고 설득하시고 믿을 만하게 확신 주시는 말씀을 거의 듣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음. 즉,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듣지 않고, 바람의 위력이 자신에게 반드시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이를 더욱 믿을 만하게 보았다는 의미. 그 순간부터 빠져 가는 베드로를 마태복음은 그대로 기록하고 있음. 이것이 내가 세상과 사람의 고통에 함몰되는 과정임을 보여주는 것이라 묵상. 복음의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듣는 것이 핵심이라 느낌. 나의 이차적 해석은 필요 없으며, 내 경험과 지식과 소견을 우회하여 내게 하시는 말씀을 듣는 것이 바로 믿음이라 묵상. 물 위를 걷는 것은 애초에 인간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라는 것을 베드로도 잘 알고 있었음. 자신이 '물 위로 오라 하소서' 요청한 일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들으시고 다시 물 위를 걸어 '오라' 하시는 말씀을 해 주신 것. 왜 자신의 기도가 이루어지는 순간에 이를 듣기 거부하는가? 이것이 바로 내 죄성의 본질임을 드러내시려 오늘 본문이 이렇게 자세히 기록하시는 것이라 묵상. 마태는 원래 세리로 세금과 관련한 인과 관계에 민감한 사람이었기에 이런 기록이 가능했다 느낌. 다른 어떤 복음서의 기록보다 베드로와 예수 그리스도 사이의 대화와 그에 반영된 인과 관계와 배경이 소상히 기록되어 있음

   -베드로는 조건을 가장 먼저 내세움. '만일 주님이시거든'. 이는 베드로도 자신이 지금 어둠 속에서 보고 있는 존재가 예수 그리스도이신지 확신할 수 없었다는 의미. 나의 고통 한가운데를 가르고 걸어오실 수 있는 분은, 그리고 그 상황을 도저히 부인할 수 없도록 보이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심을 가장 잘 알고 있을 사람이 베드로였음에도, 이미 그의 첫 마디에 도저히 버릴 수 없이 서려 있는 의심을 확인할 수 있음. 그러나 한편 전능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명하시면 불가능도 가능케 된다는 믿음의 소유자이기도 했음을 마태는 기록하고 있음. 이런 이중성은 나에게도 그대로 있으며, 이 악독한 죄성에서 비롯된 이중성이 바로 내가 고통과 좌절과 절망에 함몰되는 원인임을 복음이 내게 제시하고 있음

   -예수 그리스도께서 '즉시' 내미신 손은 내 삶에서도 수 없이 경험한 바 있음. 그 손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 여기 살아 이 묵상을 기록할  수 없었을 것. 예수 그리스도는 나와는 달리 절대로 나에게서 그의 눈길과 시선과 관심과 사랑과 돌보심을 거두지 않으셨음을 확증하시는 기록.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눈과 마음을 돌이켜 세상과 사람을 향하는 자는 항상 나였음. 그럼에도 나의 뒷통수라도 절대 놓치지 않고 사랑의 시선을 절대로 옮기지 않고 고정하신 분은 나를 먼저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렇기에 그는 그런 악독한 나를 위해, 아직 회개도 하지 않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피와 물을 다 쏟고 돌아가신 것. 이 진실과 진리를 알면 알 수록 나는 눈물을 쏟을 수 밖에 없음

32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삶의 고통이 그치는 순간은 바로 내 삶의 배 위에 나 홀로가 아니라 예수 그리도께서 '함께' 오르신 그 순간

   -이 순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백할 순간. 이 순간을 절대로 놓치지 말고 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하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 인정할 것. 내가 죄를 짓는 순간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이기에, 다시 내 삶의 배에 나와 함께 하시기를 간구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삶의 배 위에 매 순간 매일 다시 영접해야함을 잊지 말고 기억할 것


34   그들이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니

35   그 곳 사람들이 예수이신 줄을 알고 그 근방에 두루 통지하여 모든 병든 자를 예수께 데리고 와서

36   다만 예수의 옷자락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나음을 얻으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에게 나아오는 모든 자가 다 나음을 얻기 원하심. 단, 한 가지 조건은 낫기를 간구하는 자들이어야한다는 것. 간구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음. 이 진리를 절대로 잊지 말고 기억할 것. 내가 얻지 못하는 것은 내가 간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며 간구하더라도 얻지 못할 것을 잘못 간구하기 때문임을 잊지 말 것. 간구의 기준은 나의 욕심과 욕정과 욕구와 욕망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뿐임을 잊지 말아야한다 묵상

     야고보서 4장

     2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4   간음한 여인들아(또는 간음한 사람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예수이신 줄 누구나 다 알고 모든 병든 자를 예수께 데리고 온다는 기록이 내게는 너무나 이상함. 구원받으려, 천국이 가까이 왔기에 회개하러 나아온 자는 하나도 없어 보이기 때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들은 과연 들었다 볼 수 있겠나? 나는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나아오는 자라 확증받을 수 있겠나? 나의 회개는 어디갔나? 나의 천국 소망은 어디 있나?

   -죽을 수 밖에 없는 육신의 병을 위해서는 근방에 두루 통지하여 모든 병자를 모으는 정성과 노력이 있으나, 정작 영원한 멸망에 빠지게 되는 자신의 죄악을 심각하게 여기는 사람은 오늘 기록에서 하나도 보이지 않으며, 이는 바로 지금 나의 삶의 현황임을 부인할 수 없음. 당장의 고통을 예수 그리스도께 내어놓으나, 영원한 불못에 빠지게 된 나의 죄악을 회개하며 눈물을 쏟아 기도하는 것을 항상 뒤로 미루고 있기 때문. 상한 마음을 멸시치 않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정말로 나는 믿고 있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정작 원하시는 것은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나음을 얻으니라 라기보다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죄사함과 구원을 얻으니라 가 아닐까?


2. 요즘 나를 두렵게 하는 것들은 무엇인가요? 두려움에 함몰되어 있기보다 오늘도 나를 안심시키시는 하나님이 존재하심에 감사하고 있나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일번처럼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진리와 오늘 말씀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시는 복음이 나에게서 두려움을 모두 제하셨음. 나를 안심시키실 뿐 아니라 언제나 내 삶의 배위에 나와 함께 하시는 아버지께 그리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도저히 감사를 멈출 수가 없음


심정이 통하는 기도

주님, 오늘도 저와 함께해 주시고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두려움 가운데 걸으며 믿음으로 승리하게 하옵소서.


함께 기도 - 청년교구

모든 청년부의 예배를 축복하시고, 청년들이 공동체에서 하나됨을 누리게 하옵소서.


아버지, 내일 예배를 통해 아버지 하나님을 만나기 간절히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와 함께 하시도록 임재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버지를 더욱 더 알기 원합니다. 나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머물며 더 깊이 알아가기를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아버지, 이 기도가 이루어지는 순간 놀라지 않고 두려워 않고 있는 그대로 말씀을 네 심장에 깊이 새겨 넣을 수 있는 믿음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제 삶의 모든 순간과 공간과 조건 속에서 남김없이 아버지의 뜻만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버지, 저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미련하고 어리석고 우매한 저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https://blog.naver.com/joeyh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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