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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감사나눔] 감사 고백 후 일어난 기적 - 남아공 송요한 선교사 간증
글쓴이 장귀일
날짜 2025-10-26
조회수 1819

남아공 송요한 선교사, 절망 중 ‘감사’ 기도로 시력 회복한 놀라운 간증
29세에 처음 기타 잡고 하나님이 주신 재능으로 아프리카 선교 길 열려
기도로 쓰레기장에 교회를 세운 어머니의 믿음, ‘사랑의 유산’으로 남다
“복음을 전하는 일 자체가 은혜임을 깨닫게 하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지난달 22일 방영된 CBS 간증 프로그램 '새롭게 하소서'에 출연한 송요한교사는

 “29살 때 처음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지만,

하나님께서 그 재능을 선교의 도구로 사용하셨다”며 자신의 삶 속에서 일어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했다.

그의 인생은 평탄하지 않았다. 청소년 시절 어머니를 따라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이주한 그는,

 20대 후반 일본 유학 중 과로와 스트레스, 무리한 생활로 인해 갑자기 시력을 잃는 사건을 겪었다.

 

“눈이 가려워 약을 바르다 습관적으로 때렸어요. 그렇게 몇 달을 하다 보니 어느 날 갑자기 ‘스위치가 꺼지듯’ 앞이 안 보이더라고요. 의사가 말하길, ‘시신경이 손상돼 실명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죠.”

그는 한동안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쏟아냈다고 고백했다. “하나님, 왜 저입니까?

저는 어머니를 돕고 싶었을 뿐인데…” 그러나 절망의 끝에서 그는 오히려 감사의 기도를 드리게 되었다.

 

“하루는 기도하다가 ‘하나님, 이제 눈을 뜨지 않아도 좋아요. 저는 눈이 안 보여도 하나님이 쓰시겠다면 순종하겠습니다’라고 고백했어요. 그 기도를 드린 다음날, 기적처럼 눈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송 선교사는 이 경험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의 불평이 아니라 ‘감사’를 기다리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그날 이후 저는 진짜 하나님을 ‘경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분은 사랑의 하나님이지만 동시에 거룩한 분이시라는 걸 알게 됐어요.”

송요한 선교사의 어머니는 54세라는 늦은 나이에 선교사로 파송받았다.

 

그는 “기도로 모든 것을 이루신 어머니의 믿음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회상했다.

“어머니는 영어도 못하시고 가진 것도 없으셨지만, 길을 다니다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보고 ‘배가 고파서 그렇다’는

 말을 들으시곤 ‘내가 요리는 잘하지’라며 스튜를 끓여 쓰레기장 사람들에게 나눠주셨어요.

일주일에 두 번씩 200인분을 준비하셨죠.” 그 봉사는 결국 쓰레기장에 교회를 세우는 기적으로 이어졌다.

 

“3년 동안 그렇게 나눔을 이어가자 500명 넘는 사람들이 모였고, 자립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어머니는 자립이 되자 미련 없이 다른 지역으로 떠나셨어요.

저는 그 모습을 보며 ‘하나님이 일하실 때는 늘 새로운 길을 여신다’는 걸 배웠습니다.”

 

그는 29세에 기타를 처음 배웠다. 음악을 전공한 적도 없고, 악보조차 볼 줄 몰랐지만 혼자 연습하며 ‘핑거 스타일’이라는 독특한 주법을 터득했다. 한 대의 기타로 드럼, 베이스, 하모니를 동시에 표현하는 연주 방식이다.

“하나님이 주신 재능으로 기타 한 대로 밴드 사운드를 만들게 하셨어요. 처음엔 그저 외로워서 시작했는데,

하나님이 제 외로움을 사역으로 바꾸셨죠.”

 

그는 이후 ‘코리아(Korea)’라는 자작곡을 통해 주목받게 되었다. 

“동양인인데 왜 서양 음악을 치느냐”는 현지인의 한마디가 계기가 되었다.

“그래, 난 한국인이잖아. 그럼 ‘한국의 소리’를 내자. 그렇게 만든 곡이 ‘코리아’였어요.

그런데 이 곡이 대사관과 문화원에서 주목받아 하나님이 열어주신 문이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한국인 기타리스트’로 남아공 문화무대에 서며 복음을 전하는 문화 선교사로 자리 잡았다.

하나님은 그의 음악을 단순한 예술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사용하셨다.

“어느 날 중증 장애인 시설에서 연주를 했어요. 수입은 적었지만 하나님이 ‘이대로 돌아가면 안 된다’는 마음을 주셨어요.

 

그래서 공연을 다시 열어 수익을 모두 시설에 기부했습니다. 그날 하나님이 제게 말씀하셨죠.

‘이 연주는 네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다리다.’”

그날 이후 그는 상업 공연 대신 복음의 통로가 되는 연주 사역을 택했다. “기타는 내 손에 있지만, 연주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 이라는 그의 고백은 깊은 울림을 남겼다.

 

송요한 선교사는 지금 남아프리카공화국 오지 마을을 돌며 아이들에게 음식과 음악, 그리고 복음을 전하고 있다.

“햄버거 200개를 사서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연주를 해요. 

전기도 없는 사막에서 배터리 스피커로 찬양을 틀면 아이들이 처음 듣는 음악에 눈을 반짝이죠. 그 후에 복음을 전합니다.”

그는 아이들에게 늘 이렇게 말한다.

 

“얘들아, 나는 내일 이곳에 없을 거야. 하지만 하나님은 항상 너희와 함께하신단다. 내일부턴 너희가 직접 기도해야 해.”

그의 복음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아이들의 삶의 변화로 이어졌다.

“2년 뒤 다시 방문했을 때, 그 마을에 도둑이 사라졌다는 말을 들었어요. 

‘도둑질하면 지옥 간다’는 제 말을 잊지 않았던 거예요.복음이 그들의 마음을 바꿔놓은 거죠.” 

 


코로나19로 선교가 중단되었을 때도 그는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체험했다. 아이들 학비가 밀려 학사 경고를 받았을 때,

우연히 방문한 기도원에서 학비만큼의 후원금이 전달됐다.

“기도원 원장님이 ‘이 돈을 꼭 받아야 할 것 같다’며 주셨어요. 그 돈이 정확히 아이들 학비였습니다.

저는 그때 ‘하나님이 까마귀를 보내신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습니다.”

 

그는 힘든 시기에 즐겨 불렀던 찬양이 송경민 목사의 '은혜'였다.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이 축복이고 은혜였다”는 가사가 그의 사역을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고 한다.

“예전엔 복음을 전하는 걸 내가 하는 일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은혜’라고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게 제 인생의 고백입니다.”

 

송요한 선교사는 방송을 마치며 이렇게 고백했다.

“하나님이 제게 주신 기타 연주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기 위한 달란트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것뿐입니다.”

그는 지금도 남아프리카공화국 곳곳을 돌며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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