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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우리나눔] 그 죄를 가지고 어디로 가는가 |
|---|---|
| 글쓴이 | 문혜영 |
| 날짜 | 2026-06-24 |
| 조회수 | 2968 |
그 죄를 가지고 어디로 가는가
― 죄 씻음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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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남편과의 매일 성경 읽기가 구약을 마치고 신약에 들어섰습니다. 어제는 예수님을 판 유다의 죽음이 포함된 부분(마태복음 27장)을 읽었습니다.
‘그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주며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메어 죽은지라.’(마태복음 27:4, 5)
이 대목을 읽다가 멈췄습니다.
“만약 유다가 자신의 죄를 뉘우친 뒤 대제사장들에게 가지 않고 예수님께 나아갔다면, 그는 절망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남편은 다른 생각이었습니다.
“그의 뉘우침은 성령이 이끄시는 회개와는 달랐기 때문에 예수님께 나아가지 못했던 것 아닐까?”
유다는 자신이 무죄한 피를 팔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은 삼십도 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죄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가지 않고 자기 절망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죄를 후회하는 것과 죄를 가지고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은 같은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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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 (Small Things Like These, 2024)은 '오펜하이머'의 킬리언 머피가 주연과 제작을 맡은 아일랜드-벨기에 합작 역사 드라마 영화입니다. 아일랜드 가톨릭교회가 운영했던 '막달레나 세탁소'(미혼모나 불우한 여성들을 가혹한 강제 노동에 처하게 한 시설)라는 실제 역사적 비극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다섯 딸을 둔 평범한 석탄 상인 '빌 펄롱'(킬리언 머피)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마을의 수녀원에 석탄 배달을 갔다가, 그곳에 사실상 감금되어 가혹한 대우를 받는 소녀와 여성들의 현실을 마주합니다.
이 영화에서 아주 인상적인 장면은 퇴근하여 현관에 들어선 주인공 빌의 모습입니다. 그는 현관 안 좁은 복도 벽에 옷과 모자를 걸고는 바로 세면대로 향합니다. 석탄으로 얼룩진 그의 검은 손을 굵고 거친 솔로 힘껏 오래도록 씻어냅니다. 시커먼 석탄 얼룩은 물과 솔로 씻어낼 수 있지만, 고통받는 타인을 보고도 침묵하고 있는 자신의 마음은 그렇게 씻어낼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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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베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는 스코틀랜드의 장군 맥베스가 마녀들로부터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들으면서 시작됩니다. 권력욕에 사로잡힌 맥베스 부부는 던컨 왕을 살해하고, 이후 맥베스는 왕위를 지키기 위해 또 다른 살인을 거듭하다가 파멸에 이릅니다.
1막~2막에서 맥베스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돌아오는 길에 세 마녀를 만납니다. 마녀들은 그가 앞으로 ‘코더의 영주’가 되고 마침내 왕이 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예언대로 코더의 영주가 되자 맥베스와 그의 부인은 야욕에 사로잡힙니다. 부인의 부추김을 받은 맥베스는 자신의 성을 방문한 던컨 왕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합니다. 이후 3막부터 5막까지는 맥베스가 불안과 공포 속에서 살인과 폭정을 거듭하고, 맥베스 부인은 억눌렀던 죄책감으로 인해 몽유병과 환영에 시달리다가 두 사람이 파멸에 이르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저에게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맥베스가 살해 후 피 묻은 자신의 손을 씻으며 하는 대사입니다. 던컨 왕을 죽인 후 손이 피범벅이 되어 돌아온 맥베스는 물로 손을 씻으며
“넵튠(바다의 신)의 온 바닷물로 이 피를 씻어낼 수 있을까?"
라며 거대한 죄책감을 표현합니다. 오히려 자신의 손이 끝없는 바다를 붉게 물들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2막 2장)
죄, 죄책감을 씻어내려는 몸부림은 맥베스 부인에게서 더 증폭됩니다. 남편을 부추겨 던컨 왕의 살해를 실행하게 했던 맥베스 부인은 밤마다 몽유병 증세를 보이며 자신의 죄를 스스로 고백합니다. 그녀는 손에 피가 묻어 있는 환영에 사로잡혀 끊임없이 손 씻는 동작을 반복합니다.
“아직도 피비린내가 나네. 아라비아의 모든 향수를 부어도 이 작은 손 하나 향기롭게 할 수 없겠구나"
라며 절규합니다.(5막 1장) 연극으로 본 이 장면은 앞서 소개한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주인공이 거친 솔로 자신의 시커먼 손을 씻는 장면과 오버랩 됩니다.
예언대로 왕이 되었으나, 맥베스와 부인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미쳐가고 맥베스의 폭정은 또 다른 반역으로 이어져 그들 부부는 파멸에 이릅니다.
《맥베스》가 보여주는 진실 중 하나는 모호한 예언이 인간 안의 욕망과 만날 때 파멸의 길을 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언이 맥베스를 살인하도록 강제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욕망에 따라 예언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행동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맥베스 부부는 손에 묻은 피를 씻으려 했지만 끝내 자기 힘으로 죄와 죄책감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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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267장〈주의 확실한 약속의 말씀 듣고〉
빌 펄롱의 손에 묻은 석탄은 거친 솔과 물로 씻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통받는 타인을 외면하고 있다는 마음의 얼룩은 그렇게 씻기지 않았습니다. 맥베스와 그의 부인 역시 손에 묻은 피를 씻으려 했지만, 아무리 많은 물과 향수를 사용해도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유다는 자신이 무죄한 피를 팔았다고 고백하고 은 삼십을 돌려주었지만, 이미 저지른 죄를 스스로 되돌릴 수 없다는 절망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지우고 싶어 합니다. 잘못을 되돌리고, 대가를 치르고, 손을 씻고, 기억을 지우려 합니다. 그러나 죄는 석탄가루처럼 물로 씻어낼 수도 없고, 이미 받은 돈을 돌려주는 것만으로 없었던 일이 되지도 않습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죄 씻음은 내가 내 죄를 깨끗하게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씻을 수 없는 죄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가 용서를 받는 일입니다. 유다가 죄를 깨닫고도 예수님이 아니라 대제사장들을 찾아갔다는 사실이 마음에 오래 남습니다. 죄를 깨닫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죄를 가지고 누구에게로 가느냐가 중요합니다.
찬송가 267장〈주의 확실한 약속의 말씀 듣고〉 의 후렴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가 예수를 믿어
그의 흘리신 피로 내 죄 씻었네.”
맥베스가 절망했던 것처럼 온 바닷물로도 씻을 수 없는 죄를,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씻는다고 말합니다. 죄 씻음은 인간이 스스로에게 내리는 무죄 선언이 아니라, 죄인이 자기 절망에서 돌아서서 그리스도께 나아갈 때 받는 용서와 새로운 시작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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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기"고통받는 타인을 보고도 침묵하고 있는 자신의 마음은 그렇게 씻어낼 수 없었습니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이사야 58:6)
지금, 이 시대의 흉악의 결박에 대해 (포지션 때문에)침묵할 수는 있지만, 자신의 마음마저 침묵한다면 그것이 바로 가룟 유다의 길로 가는 것이 아닐까 하여.... -
문혜영영화 말미에 주인공 빌은 결국 수녀원에 가서 창고에 갇힌(버려진) 여성을 집으로 데려옵니다. 아마 감독은 오랫동안 방관하며 괴로워했던 일이 실상은 가서 데려오는 아주 사소한 단순한 일로 해결될 수 있는 일이었다고 말하는 거 같았습니다.